수곽(水廓)
/문정영
나는 한때 물처럼 맑다고 생각했다.
물로 집 한 채 지었거나
물의 집이라는 생각도 가져 보았다.
그런 나를 비추자 물빛이 흐려졌다.
내가 지은 집은 지는 해로 지은 것이었다.
고인 물을 막은 것에 불과했다.
내가 흐르는 물자리였으면
새 몇 마리 새 자리를 놓았을 것이다.
갑자기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보면
눈물로 지은 집 한 채가 부서졌고,
눈물도 거짓으로 흘릴 때가 많다고 생각했다.
내가 누운 집이 두꺼비 집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깊다는 생각은 그만 두기로 했다.
물은 엎드려 흐르는 것인데
내가 지은 집은 굽이 높았다.
-문정영 시집 〈그만큼〉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때가 있다.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볼 때가 있다. 흐르는 물처럼 살아왔기에 당연히 그 물의 집에 비치는 모습도 깨끗할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물빛이 흐려지고 이내 자신이 고인 물을 막은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을 모르다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얼마나 굽 높은 집을 짓고 살아왔는지, 내가 누운 집이 얼마나 무용지물인지, 한 번쯤 되돌아보지 않고서는 쉽게 알 수가 없다. 결국, 알게 된 사실에 눈물 흘리며 뼈저린 반성을 한 후에야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제껏 저어온 방향키를 어디로 돌려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큰 집이 되고 싶다. 그 속으로 많은 이들이 들어와 오래도록 머물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비우자. 엎드려 흐르는 물처럼 나를 낮추자. 그럴수록 내가 더욱 깊어지고 높아지는 것이기에. /서정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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