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목소리(외 1편)
정호승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다가 사라진다
골목길에서 나를 부르던 당신의 목소리도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누가 자꾸 나를 부른다
얼른 뒤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길을 갈 때마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이 나를 부르나 싶어
한참 올려다봐도
아니다
밝은 대낮에 별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다
구름 몇 점 웃고 있는
푸른 하늘에 가슴을 숨기고 나를 부르는
별들의 목소리다
징검다리 곁에서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리다가
그만 고무신을 떠내려 보낸
개울물 소리 같은
별들의 목소리다
별들이 질 때까지
별들이 질 때까지
살아 있어라
별들이 마른 무논의 벼포기처럼 자랄 때까지
살아 길을 걸어라
별을 바라보며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별들이 아직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날 때마다
너의 가난한 차창에 별들이 서성인 것을
그동안 너는 알지 못했다
가끔 고추장에 밥을 비벼먹고
별들이 질 때까지 살아
길을 걸어라
눈물의 저녁이 오면
가난도 별이 되어 떠오른다
- 《발견》2014년 겨울호에서 옮김
* 별은 내 인생이 도달해야 할 한 지향점이자, 내 시에 가장 빈번이 차용되는 이미지다. 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존재할 수 없고 시 또한 쓰지도 못할 것이다.(정호승)
출처 : 함께하는 시인들 The Poet`s Garden
글쓴이 : 물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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