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사로잡은 詩

' 둥근잎꿩의비름' 外 4편 / 김은자

그린민트 2015. 3. 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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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방송 2015 신춘문예 당선자 발표
김은자 씨, <둥근잎꿩의비름> 등 5편으로 당선의 영광 차지

한국문학방송에서 시행한 2015년도(제7회) 신춘문예 현상공모에 김은자(55) 씨가 당선됐다.

당선작은 <둥근잎꿩의비름>, <폐염전>, <화장>, <버려진 집>, <동태> 등 5편으로, 
채점제 방식인 본선에서 다른 응모자들보다 상대적으로 고르게 높은 점수를 획득함으로써 
당선의 영광을 차지했다.

김 씨는 월간 《시문학》과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시부문)에 당선된 바가 있다.



당선작(5편)

 

  


둥근잎꿩의비름*


   움켜잡은 손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창칼에 쫓겨 낭떠러지에 몸을 던진 여자 죽은 뿌리에 걸려 바위틈 몇 알의 흙을 부여잡은 여자 수직으로 날이 선 채 과부처럼 살아온 여자의 살결에서 살의가 빛나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실족이라 했지만 엄연한 개화였다 은장도를 가슴에 품고 산 맨발을 보아라 흙을 딛지 못하면 살 수 없어 비탈에 집을 지었다 얼마나 많은 바람을 끌어안아야 했을까? 꽃잎이 어긋나 있는 것을 보니 수천 번 엇갈린 것이 분명하다 계곡의 습기를 모아 터지는 눈망울 마주나거나 돌려 난 녹백색 잎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난다 산비탈 아래 마을의 반짝이는 불빛이 진홍색 눈물처럼 짙다 아찔하면서도 고혹적인 자태 절벽 위를 날던 새가 둥근 저녁을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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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비탈 바위틈에서 자라는 돌나물과에 속한 여러 해 살이 풀의 이름



 
폐염전

 

무너진 서른세 번째 소금창고가 그녀였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은 모른다
무거운 도시를 이고 풀썩 주저앉은
케케묵은 소금집이 애를 순산하고도 버림받은
소래 여인이었다는 것을 세상은 알지 못한다

풍경을 위해 이목구비를 지운 여자
풀숲으로 돌아가는 저녁이면
머리 위로 흰뺨검둥오리 날아오른다
바람만은 지우지 못하고 떠난 그녀,
번제를 위한 그녀만의 방식이었으리라
쓰러진 소금창고 정지된 시간 위에
여체는 광물처럼 누워있다

촛농처럼 녹아내린 발가락들이 바다로 쓸려갈 때마다
염전이었던 방은 파도소리를 토해 놓는다
축적된 것들이 소금처럼 고요한데
시체 한 구가 민물에 밀려갔다 밀려온다

습지의 갈대들은 느리게 돌아가는
무성필름처럼 동작과 대사가 맞지 않는다
과거를 알아듣는 사람은 없다
염부들이 팔뚝에 불뚝 솟은 힘줄 같은 전설을
말없이 바닷물에 밀어 넣는 밤

백야(白夜)다,
스러진 것들이 경계를 허물며 갈대숲을 피워 올리는 하얀 밤
소금창고 지붕이 바람에 휘날린다

오래 잊고 살았다
소금창고 양철지붕 위에 떨어지던 빗방울 소리를
비무장지대처럼 살다 바람이 된 갯골 여자를

 

 화장

 
관이 불 속으로 들어가자 나는
죽을힘을 다해 엄마를 불렀다
안 보이는 영토가 썰물처럼 밀려들어 갔다
조금씩 어두워지면서 천착되어가는 시간의 무늬들이
탯줄이 끊긴 갓 태어난 아기처럼 오열했다

엄마와 나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엄마, 편히 쉬세요’  

엄마는 평소 화장을 지우던 저녁처럼
수건을 머리에 쓰고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화장을 지우러 가는 거란다’
무거운 옷을 벗고 속뼈까지 태워달라는 엄마
흐린 날이면 하늘을 힘차게 날아가는
갈매기 눈썹 그려 넣었던 시절이 엄마에게도 있었다 
슬픔과 웃음을 섞어 견고한 입술을 찍으며 살았던 시간
엄마의 귀는 접혔다가 펴지는 우산 같아
토란잎처럼 젖지 않았다

엄마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를 받아 쥐고 알았다
한 움큼의 웃음, 한 움큼의 울음, 한 움큼의 엄마
자리를 비운 사이 창 밖에는 겨울이 오고 있지만
하얀 맨발 엄마가 지금도  따스하다



 버려진 집 


버려진 것들은 구멍으로 살신하는 근성이 있다
구멍은 퇴화되어 바람으로 부활하는 마력이 있다
남겨진 것들은 모두 저 혼자 쓰러진 것들
혼자 우는 사이 구멍이 되고,
구멍이 통로가 되어 문으로 변한 것들이다

빈 창살이 바람과 몸을 섞어 부재가 되었다
행간마다 숨결을 놓지 않은 까닭이다
고독이 짐승처럼 뛰쳐나와 깨진 창문
버림받은 것들은 안으로 소리를 품고 있다
기울어진 빛들이 벽으로 위태롭게 쏟아진다
방목된 것들이 기원 속으로 스며드는 저녁

빛바랜 페인트가 몸을 추스르고 앉은 노파의 등처럼
허물어진 지붕 위로 쿨럭 쿨럭 마른기침이 새어나가고
침묵하던 것들이 흐르기 시작한다
떠돌던 새가 돌아올 징조다
이제 바람 소리를 기록하던 것들이 귀화하리라

마른 골격위에 별들이 휘추리처럼 매달려 있다
바람은 길게 누운 몇 세기전의 계절을 접신한다

방울을 세게 흔들며 버려진 자가 버린 자를 부르는 밤
한 뼘 열린 뒷문으로 스무 평 남짓 전답이 바다 같다



 동태

 
동태가 생태보다 무서운 것은
토막 난 몸으로도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문객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후의 눈
내 살 누가 파먹나 사력을 다해 노려본다는 것이다
핏발이 선 눈빛에 말없이 수저를 놓는다
용서 같기도 하고 포기 같기도 한 눈빛이
내공처럼 탱탱한 울음을 채워 넣고 있다
흐릿한 기억으로 생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꽝꽝 얼도록 시력은 흔들리지 않는다

살이 달콤할수록 등골이 오싹해진다
썩은 동태 눈깔이라고 누가 비웃었던가?
동태 눈깔 파먹는 재미 쏠쏠하다고 입을 모으는 저녁
시선은 골격을 허물지 않는다
남은 한 점의 살점까지 지켜본 뒤 버려지리라
지느러미 불태우고 내장이 뿌려지도록
마르지 않는 눈길이여
동태가 보고 있는 것은 허공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쏘아보는 냉혈의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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