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화(點話) / 문정영
보고 듣지 못하는 그는 손가락에 눈과 귀가 있다.
상대방 손가락 위에 자기 손가락으로 점자(點字)를 쳐서 대화를 한다.
눈물 한 방울이 점자처럼 손등에 떨어지기도 한다.
보이거나 들리는 것은 화려함이 먼저라고 척추장애인 아내에게 배운다.
눈과 귀를 닫고 마음으로 보면 세상은 눈물방울보다 작다.
아내의 손끝에서 꽃향기와 별빛을 읽는 그는 부드러워지고 부드러워진다.
그는 불안과 고통에 이르는 것도 달팽이만큼 느리다.
일 년처럼 읽고 십 년처럼 느낀다.
문장이 단순해진 것은 느리게 가는 것들을 적기 위해서이다.
그는 손가락으로 풀잎과 공기를 더듬어 쓰는 작가이다.
새벽의 연우(煙雨)가 막 깨어난 꽃잎을 감싸는 것처럼 손끝이 별빛에 가 닿는다고 쓴다.
그가 점화(點火)되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한밤중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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