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독 默讀
조재형
당신을 읽는 중입니다
읽을수록 손을 놓을 수 없어요
앙가슴에 고인 설렘으로
그리움을 넘기고 또 넘깁니다
모음으로 된 당신의 미소
자음으로 된 당신의 눈물
감탄 부호로 찍힌 당신의 음성
수억 개 관문을 뚫고 입성한 내게
가장 잘한 일을 묻거든
당신삼매경을 꼽을 것입니다
언제일까요
폐문 시간을 맞이한 날
돌연 이 곳을 나서야 할 것이지만
당신이라는 양서를 택한 나는
행복한 사서(司書)입니다
차마 소리를 내서는 읽을 수 없어요
누군가 당신을 복제할까 봐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마음으로만 필사하는
당신이라는/오래된/책 한 권
-시문학 지령500호 기념 사화집 [오백번의 응]중에서 발췌-
출처 : 오래전의 전화번호를 기억해내다
글쓴이 : 회떠주는 여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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