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서적/ 기형도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빈 희망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서표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 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처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한다. 단 한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시감상]
이 시의 근본비유는 '나=오래된 서적' 이다. 바로 내가 오래된 서적이 되어 독서의 대상이 된다.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비유체계다. 즉, 근본비유가 시 전체를 간섭하지 않고있다.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는 질서" "서표를 꽂는다" "좀 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등의 비유는 낯설고 신선하게 제시된다. 즉, 한 사람의 생애가 극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시의 의미는 풍요롭고 다채로우며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직접적이고 평면적인 어휘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시가 고만고만하게 갇히는 폐단을 극복하고 있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비유체계] 나의 삶(원관념)---------------------------오래된 서적(비유) 눈에 띄지 않는 존재------------------------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는 질서 의미 있는 삶이라 강조한다------------------서표書標를 꽂는다 어렵게 살아야 한다/ 삶의 깊이--------------좀 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 두께 암울한 상황-------------------------------검은 페이지 주목하다----------------------------------펼쳐보다 하나의 진실--------------------------------한 줄
존재에 대해서는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다. '거짓이나 참됨을 논하는 자들의 말은 오직 한 줄 이어야한다'뜻이다. '오직 진실이 중요하다는 것(5연). 시적 주체는 타자의 시선에 갇혀, 암울한 존재이지만, 진실은 펄펄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묘사하고 있다.개성과 현실성이 깊게 결합된 입체적인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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