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시장 아줌마 / 권순자
어머니의 칼국수 냄새가 진동하는 시장어귀
잠시 내 눈이 빛나고 어머니가 걸어 나와 칼국수를 써신다
하도 투명하고 맑아서 어머니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꿈속에서 머물던 어머니
너그럽고 상냥한 어머니의 목소리
완벽한 맛이 떨린다
어머니의 칼국수를 먹다가
칼바람보다 매서운 세월에 시달리신 어머니를 떠올리다가
칼칼하게 목을 훑고 넘어가는 국수 가락에 목이 메다가
칼처럼 어머니의 시간을 베어가던 가난을 추억하다가
가슴을 출렁거리게 하는 국물에 가슴을 데어
매워서인지 뜨거워서인지 그리워서인지
눈물이 조금 났다
하늘을 베며 나르는 겨울새
어머니 목소리인지 내 목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나를 물고 사락사락 끌고 간다
모락모락 칼국수집 뜨거운 열기에
풀리는 살갗이 붉게 번진다 통증처럼.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2016)
출처 : 시인의 눈
글쓴이 : 자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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