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사로잡은 詩

울타리/최석우

그린민트 2013. 3. 8. 13:04


울타리


-최석우


어느 날인가
울타리 하나 있었으면 했다
바깥엔 폭풍과 혹한이 몰아쳐도
울타리 안에는 따뜻한 햇볕과
알맞은 약비와
푸른 하늘
아름드리 나무와 향기로운 꽃들이 가득하여
나는 그저 철없이 뛰노는 어린 여자 아이고 싶었다

어느 날인가
그 울타리가 한 사람이었으면 했다
넉넉한 품을 갖고 있는 한 남자였으면 했다
사랑으로, 지고지순의 사랑으로
그가 울타리가 돼주었으면 했다
나는 세상과 완벽하게 차단되어
오직
그를 통해 세상을 보고
그를 통해 내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어느 날인가
어느 날부턴가
나는 스스로 울타리가 되어야 함을 알았다
나도 맨살을 바람의 채찍에 내맡기고
지켜야할 세상이 있음을 알았다
어쩔 수 없이
지금 나는
그러나 가능한 나의 모든 의지로
스스로 울타리가 되어 지켜내야 할 세상을
한 뼘 한 뼘 재고 있다